필리핀의 소자본 소점포 사리사리 스토아
필리핀 어디에나, 소자본 소점포 사리사리
필리핀 여행을 하다보면, 또 거주를 하다보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동네 소규모 점포들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과거 담배가게, 혹은 점방이라고 불리는 작은 규모의 구멍가게인데, 이런 가게를 필리핀에서는 '사리 사리' 스토어 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따갈로그 답게 이 사리사리라는 말은 인도네시아 어로는 '나날들'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필리핀 현지 말로는 '모든 것 everything'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사리사리 스토아는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골목 상권이다. 큰 마트나 몰이 들어올 수 없는 상권, 외진 골목이나 혹은 빌리지 안에는 이런 사리사리 스토어가 꼭 한두개 씩은 있다. 필리핀의 더운 날씨에 멀리 가서 물건을 구입하기 귀찮아 하는 사람들이나 긴급하게 물건을 사야 하는 사람들, 또, 소규모로 물건을 구매하는 동네 사람들이 이 사리사리 스토아의 주요 고객이다.
사리사리 스토아에는 다양한 물건을 판매한다. 과자부터 시작해서 음식 조리용 소스까지, 또 학교앞의 사리사리 스토아는 학용품을 판매하는 등 만물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있다. 사리사리 스토아에서 판매하는 것들은 '사쉐이'라고 해서 한번 쓸 분량만 판매하는 것들이 많은데, 과자도 한국 기준으로 보기에는 미니 과자, 샴푸, 치약도 한번 쓸 분량만 포장한 미니 샴푸를 판매한다. 담배 역시 마찬가지로 개피로 판매한다. 이런 물품들은 자취를 하는 사람들이나 여행객들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이런 물건들은 사실 살때는 쌀꺼 같지만, 큰 용량을 한번에 사는 것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필리핀 사람들도 당연히 이걸 알지만, 서민들의 소득수준으로는 큰 용량의 물건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제조사에서도, 판매처에서도 작은 용량의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 소규모 상점답게 때로 거스름돈을 거슬러 주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 가게 입구의 사탕 하나당 1페소로 계산해서 가져가라고 하기도 한다. 또, 왠만한 규모의 사리사리 스토아가 아니면 냉장시설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리사리 스토아는 찾아보기 힘들다. 얼음을 만들어서 작은 비닐봉지 채로 파는 것도 특징이다.
사리사리 스토아의 특징은 개방형이 아니고 폐쇄형이라는 것이다. 마트 규모의 매장이 아니고서는 물건을 확인할 수 없고 눈으로만 보고 살 수 있게끔 쇠창살이나 나무로 가게 입구가 막혀 있다. 가게로 들어가려면 주인만 들어가는 뒷문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물건을 구입하는 손님은 눈으로 물건을 보고 가게 주인에게 어떤 것을 구입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면 꺼내주고 계산하는 식이다. 이런 판매 방식은 당연히 안전하지 않은 치안, 총기 소유로 인한 위험성 때문이기도 한데, 사리사리 스토아가 있는 지역들이 일명 스쿼터 에어리어 라고 하는 우범지대에 있는 경우도 있고, 밤에도 영업을 하기 때문에 보안 때문에 이런 방식의 판매전략을 이용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필리핀 뉴스가 바로 이런 사리사리 스토어가 늦은 밤 털렸다는 내용들이다.
사리사리 스토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모하는 것이 바로 탄산 음료. 탄산 음료는 업체에서는 당연히 병으로 납품 받지만 이 병 하나하나에 보증금이 걸려 있다는 사실. 그래서 손님이 탄산 음료를 사게 되면 병을 가져가면 보증금을 따로 내야 하고, 병을 돌려주면 다시 보증금을 반환해 준다. 이런 것이 싫으면 작은 비닐 봉지에 탄산을 담아서 빨대를 꽂아 주기도 한다.
사리사리 스토아에서 더 많이 팔리는 물품들은 바로 술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미구엘 맥주는 사실 일반 서민들이 한캔에 적어도 40페소 이상을 내고 먹기에는 부담이 많이 된다. 그들의 월급이 한달에 15000~20000페소에 불과하기 때문이기도 그렇고, 서민들은 산미구엘 맥주와 그렇게 친숙하지 않기도 하다. 일반 서민들은 탄두아이 럼 등 적은 용량으로도 쉽게 취할 수 있는 술을 많이 구매해 먹는 편이다. 사리사리 한 구석에는 이런 술을 만드는 회사에서 제공한 연예인들이 수영복을 입고 촬영한 달력이 꼭 한켠에 걸려있다. 이런 홍보 전략은 한국의 소주 회사 등이 연예인을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리사리 스토어의 납품방식은 주인이 직접 물건을 사와서 가게에 진열해 두는 방식이 있기도 하고 납품업체에서 물건을 직영으로 받아서 판매를 하는 방식을 혼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리사리 스토어는 영세하기 때문에 정식간판을 만들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코카 콜라 등의 큰 업체에서 자신들의 물건만 납품받는 계약을 하고 간판 제작 지원을 받기도 한다. 이런 간판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코카콜라 홍보 그림이 있고 그 아래에 가게 이름을 써 놓는 정도의 간단한 간판이다. 보통 따로 가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닌 주인의 이름을 적어놓는다. 예를 들어 neneng(주인이름)`s store.
사리사리 스토아는 일반 물건 판매 뿐 아니라 여러가지 다른 판매도 병행하는데, 스토아의 크기에 따라, 물을 판매한다거나,필리핀 선불 심카드와 전화를 할 수 있는 로드(핸드폰 충전 요금)을 판매하기도 하고, 학교 주변이라면 작은 피시방을 차려서 적지않은 부수익을 얻기도 한다. 또 지역에 따라 노래방이나 심지어 빨래방을 운영하는 등, 이름은 사리사리 스토아지만 그 규모를 뛰어넘는 이름만 '사리사리' 인 경우도 많다.
사리사리 스토아는 동네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정보도 교환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하루를 보내는 곳. 그 곳이 바로 사리사리 스토아 이다. 또, 돈없는 청춘들이 근처에서 연애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리사리 스토아 운영에는 큰 걸림돌도 있다. 동네에 친인척들이 많이 거주하다 보니 주변에서 돈을 내지 않고 가져가는 외상비율이 너무 높다. 필리핀 서민의 삶이란 뻔해서, 매일매일 열심히 일해도 수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도저히 외상을 하지 않고서는 물건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사정하면 외상을 주기도 하고, 이렇게 하다보면 경영에 안좋은 영향을 끼쳐 결국 파업을 하게 된다. 또, 자기 잠식으로 식구들이 기껏 사온 사리사리 물건을 다 먹어버려 경영난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마진율이 20%정도로 10페소에 물건을 구매해 12페소에 판매하는 형태의 사리사리 스토어는 이런 방식의 경영 악조건에 무척 취약하다.
필리핀 사람들의 꿈
필리핀 사람들의 꿈 중 하나가 일정 수익을 얻는 자기 사업체를 차리는 것. 매년 젊은 노동 인구가 쏟아져 나오고, 정말 확실한 직장이 없거나 자기 사업이 없는 경우, 금새 노동시장에서 밀려 일자리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필리핀인들이 좋은 수입과 미래의 안정성을 위해 해외 노동자로 나가곤 한다. 이런 필리핀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가장 쉽게 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리사리 스토아.
노후에도 쉽게 할 수 있고, 보통 자기 집 한켠에 하기 때문에 가게세도 거의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도 많이 시도하는 사업이 바로 사리사리 스토아 이다. 필리핀에 여행갈 기회가 생기면 꼭 한번 사리사리 스토아에 들려보도록 하자. 작은 구멍가게에 필리핀의 여러가지 문화 요소가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