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으면 온다. 필리핀의 복합 쇼핑몰 'SM' 슈퍼몰
필리핀의 상징이 되버린 쇼핑몰 SM
필리핀 거리의 안좋은 점을 말하자면 습고 덥하다. 길거리는 깨끗하다고 볼 수 없고, 교통체증도 심하다. 문화 생활을 할만한 장소도 한국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필리핀의 단점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물론 이런 점에 비해 다양한 장점도 많다.
거두절미하고 한국에 비해 아무래도 아쉬운 필리핀의 일반 도시의 거리를 걷다보면 이런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깨끗하고 거대한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딱 봐도 적어도 수천평 정도는 되보이는 건물에 SM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고, 주변에 큰 주차장과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 교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이 SM. SM이란 이름은 원래 SHOE MART의 약자로 창업주 헨리 시의 첫번째 사업이였던 신발가게에서 따온 글자라고 한다. 구멍가게를 대기업으로 키워냈던 헨리시의 역량을 지금도 엿볼 수 있는 부분.
이 큰 건물이 바로 SM. SM은 '지으면 온다'라는 창업주 헨리시의 가르침에 따라 철저한 유동인구 조사와 상권 분석 후, 교통의 요지, 사람들의 활동이 많은데 아직 상가들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은 곳에 대형 쇼핑몰을 만들어 주변 인구의 모든 상업 활동을 이곳에 집중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버금가는 로빈손, 중부 비사야스의 가이사노, 또, 소규모 체인으로 퓨어골드 등 각종 다양한 상업 체인들이 있지만, 필리핀 전국적으로 제대로 된 체인을 처음 시작하고 성공시킨 것은 SM이 그 시조라고 봐야할 정도로 필리핀 전국의 대도시에 다양하고 특색있는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필리핀의 성공을 바탕으로 창업주 헨리시의 고향인 중국에도 새로이 쇼핑몰을 열 정도로 공격적인 판매 전략과 이익을 거두고 있는 쇼핑몰 체인이기도 하다.
또, 최근에는 유통업에 치중하여 SM의 본연의 사업이 없는 것에 착안, 다양한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경쟁력제고와 함께 고용 증진도 향상시키는 등의 다양한 기업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SM의 신화를 이룩한 푸젠성 출신의 거인 '헨리시'
한때, 경제지 포브스에 한국의 김건희 회장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필리핀의 경제 거인 헨리시.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2019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단연 필리핀 경제계를 쥐고 흔들었던 거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24년 다른 필리핀의 중국계 거부들과 같이 중국 남부의 푸젠 성에서 태어나 12세가 되던 해, 아버지의 결단으로 온 가족이 필리핀으로 이민 온 화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가족이 생계를 위해 장사에 매달렸는데, 어렸을 때부터 놀기보다는 가족이 하는 사업을 도우면서 장사를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한 감을 익혔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가족들이 소유한 상점이 불에 타 없어지게 된다. 가족들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으나, 헨리 시만큼은 학교 졸업을 위해 필리핀에 남게 된다.
1950년대에 마닐라의 '파 이스턴' 대학을 졸업한 그는 당시 필리핀 중부 비사야스와 북부 마닐라의 신발이나 다양한 물건 가격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가 직접 수백 킬로미터를 물건 재고를 가지고 왕복하면서 신발 유통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런 사업 방식은 오늘날에도 필리핀에 사는 많은 중국계 필리핀인들이 '머천다이징'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1958년 자신의 첫 가게, 슈 마트를 만들게 되는데, 탁월한 경영수단으로 자신의 점포를 점점 늘려나갔던 그는, 1970년대 마침내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종합 쇼핑 몰을 열게 된다. 아직 SHOE MART 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그리크지 않은 쇼핑몰은 헨리시의 필생의 전략 '필요한 곳에 지으면 반드시 온다'라는 모토아래 점차 성장하게 된다.
치밀한 상권 분석으로 그 지역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각 지역마다 저렴한 물건을 사들여 필요한 곳에 시기적절하게 공급하는 능력으로 더욱 큰 성공을 거두게 된 헨리시는 다음단계인, 부동산업과 금융업에도 진출하게 된다.
부동산 업체인 SMDC 와 필리핀의 굴지의 은행인 BDO(뱅크 데 오로) 를 소유하게 된다.
이런 다양한 성공을 거둔 헨리시는 자신을 성공하게 해 준 사회에의 기여를 잊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양한 장학재단, 수백개에 이르는 학교(내셔널 유니버시티 설립), 어려운 학생들의 빈곤 지원, 회사 내 장학금 시스템등을 만들고, 시시 때때로 강연을 열어 어려운 젊은이들을 격려했던 일화는 지금도 여러 매체에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SM의 경영방법
SM은 시기 적절한 장소, 그리고 거대한 상권을 한번에 계획하여 그 지역의 상업 지도를 바꿔버릴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SM 내 점포의 계약등을 통해서 SM 자체 몰 자금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다.
외국의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유통비용을 최소화하고 외국기업의 필리핀 현지 유통을 독점하기도 했다.
필리핀의 노동시장의 헛점을 파악하여 취업자의 정규직화를 최소화하기도 한다. 6개월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된다는 필리핀의 노동법을 피해 정말 뛰어난 직원이 아니라면 5개월 이상 일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으로도 유명하다. 이로 인해 많은 원망을 듣고 있다.
또, 부동산과 금융업을 같이 소유하고 있다는 장점을 백분 살려 지대 매입과 자금 융통을 동시에 해결함으로서 기업 자체의 부채와 위험 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전략도 채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