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아플 때
외국에서 아프다는 것은 무척 서러운 일이다. 필리핀에 사는 한 사람의 교민으로서 한국과 달리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체,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디선가 받아온 싼 약을 먹으며 끙끙 앓아본 기억이 있는 필자로서는 더욱 그렇다. 단순히 감기나 몸살, 두통, 체한 것 같은 비교적 가벼운 질병이라면 어떻게든 근처의 약국에서 약을 받아와 먹고 버텨보겠는데, 사람일이 항상 그렇지가 않듯, 몸이 크게 아플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 약 처방전을 얻기 위해 병원에 방문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사고가 나거나 갑자기 지병이 도지거나 하면,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에 가는 것이겠지만, 여러 가지 시간적인, 공간적인 문제로 인해서 한국에 방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보통 현지 병원을 방문하게 되는데, 우선 의학적인 용어부터 막혀서 사전이나 핸드폰 사전기능을 이용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 큰 걱정은 바로 금전적인 부분이 될 수 있다.
병원에 처음 가게 되면
병원에 가면 우선 병원 구역마다 마련된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보고 상황에 따라 병실을 배정받거나, 가벼운 질환이라면 약을 처방받는다. 만약 응급실을 거치게 된다면, 해당 응급실의 의사가 간단한 검사 및 진료를 보고 바로 병실을 배정받게 된다. 병실은 보통 1인실, 2인실, 다인실로 나뉘는데, 공립 병원의 경우 1,2인실은 거의 배정받기가 불가능하고(병원 내부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고 평소에는 거의 불가능), 다인실은 한국사람이 이용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병원이라고 하기에는 불결한 점도 있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병실에 입원하게 되면, 혹은 입원 전에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필요한 부분만 짚어서 간단하고 빠르게 진료해 주는 한국과는 다르게 필리핀은 혈액검사, x ray 검사와 같은 모든 기본적인 검사 및 한국인이 보기에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까지 모두 검사를 하게 된다. 이런 과도한(?) 검사는 내가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 찾아낼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국 사람이 보기에는 시간만 끌고 과잉 진료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검사 후 병실에 입원하게 되는데, 약만 투여받는 경우, 아니면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로 나뉘게 된다. 약만 투여받는다면, 간호사들이 의사의 처방전을 기반으로 어떤 약을 사야 할지 알려주는데, 병원 내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경우도 있고, 병원에 약이 없다면 밖에서 사가지고 와야 하는데, 외부에서 약을 구입할 경우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정가를 그대로 내야 해서 금전 부담이 커진다. 최대한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을 의사와 상의해서 병원내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병원과 병원내 약국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약 구매분에 대해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다.
병실을 배정받고, 약을 먹거나 링거를 맞는데, 의사가 주기적으로 진찰을 오게 된다. 매일 하는 정기 회진 때, 환자의 퇴원 혹은 입실 연장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수술의 경우에는 수술까지 필요한 약이나 진통제를 미리 투여하고, 수술의 준비를 한다. 수술은 해당 전문의들이 모두 모여야 진행이 가능한데, 의사가 병원 소속이 아니고, 개인 사업자적인 면이 강한 필리핀의 특성상 해당 의사들을 다 모으기 쉽지 않기도 하고, 대도시가 아니라면 전문의가 몇 되지 않기 때문에 수술에 따른 의사 서비스 비용도 무척 비싼 편이다.
수술이 끝나면 회복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개복 수술이라면 적어도 2주에서 한 달은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한다. 일반 링거만 맞는 정도의 통증이나 질병이라면 늦어도 2주 안에는 퇴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병원에 머무는 사이 간간히 계속 중간 검사와 추가 약품 구매를 하게 된다.
병원 퇴원
모든 절차가 끝나고 병원에서 퇴원해야 하는데, 먼저 퇴원 전에 원무과에 들러서 그동안의 병원비를 정산하고, 필헬스(의료보험)를 적용해서 병원비에 대한 할인을 받게 된다. 처음 병원에 가는 한국인들은 아마 이 부분에서 깜짝 놀랄 수 있는데, 병원비가 상상이상으로 많이 청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술을 하는 경우 최소 몇백만 원은 들어가고 일반 병실에서 링거만 맞다 나가는 경우라도 수십만 원은 소모된다.
이런 과도한 병원비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외국인이라 현지 보험 처리가 안된다는 점. 그리고 병원에 지불하는 검사비, 입원비(병실 사용료), 뿐 아니라 약품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 사실 이 정도까지만 계산하더라도 아주 큰 금액은 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항목이 바로 '닥터피'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의 경우, 병원에 의사가 소속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 자신이 개인 영업자이기 때문에 각 병원에 이름만 걸어놓고 사무실만 대여해서 여러 병원을 오가면서 진료를 본다. 여기에서 더욱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되며, 의사가 어떻게 진료를 하느냐에 따라 병원비가 많이 차이 날 수 있다. 좋은 의사를 만나서 적절한 가격에 적당한 치료를 받는다면 좋겠지만, 의사에게 치료의 전권이 있기 때문에 지나친 과잉 진료를 하더라도 환자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 이렇게 진료를 하면 의사피(닥터피)를 퇴원 시에 무척 많이 청구하기 때문에 병원이나 의사를 선택하기 전에 평소에 미리 좋은 병원, 의사를 알아두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또, 의사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의사비를 네고할 수 있다는 점. 의사들도 최대한 빨리 비용을 받고 다음 환자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담당집도의나 의사를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닥터피를 할인해 달라고 요구하면 어렵지 않게 의사 서비스 비용을 할인해서 재 청구해 주는 편이다.
*한국인으로서 필리핀 병원을 좀 더 저렴하게 이용하려면
1. 교민이라면 '필헬스'에 가입하는 편이 좋다. 오래 거주하는 분이라면 관광비자를 가지고도 필헬스 가입이 가능하다. 1년에 17000페소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필리핀 생활에 있어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필헬스를 가입하더라도 사립 병원에 갈경우 병원비 할인이 많이 되지 않는 편이지만, 공립병원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비용이 커버되므로, 형편에 다라 필헬스(필리핀 의료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보통 도시에 한두군데 정도는 필헬스 관련 사무실이 있으므로, 그곳에 찾아가서 가입하자.
2. 여행자 보험을 꼭 들자. 현지에서 발생한 의료비에 대해 보상해 주는 의료 관련 여행자 보험을 들게 되면, 필리핀 현지에서 병원에 가더라도 좀 더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여행자 보험을 가볍게 생각하고 자유여행의 경우 들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정에 따라, 혹은 여행사에 따라 여행자 보험을 들어두는 것은 추가 비용 지출에 대해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경우 관련 서류를 하나도 버리지 말고, 관련 서류(1. 병원 진료 영수증. 2. 의사소견서, 3. 처방전 4. 약국 관련 영수증 등)를 받아서 의사가 만들어준 각종 서류와 함께 한국 보험 회사에 제출하면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해외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리핀식 중국 식당 프랜차이즈 '차우킹' (2) | 2023.05.20 |
---|---|
한국의 에스크로, 필리핀의 신용거래 (1) | 2023.05.19 |
필리핀의 떡 종류 (0) | 2023.05.13 |
필리핀에서 살아가기 위한 비자의 종류 (1) | 2023.05.13 |
지으면 온다. 필리핀의 복합 쇼핑몰 'SM' 슈퍼몰 (2) | 2023.05.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