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사회의 특징
필리핀에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필리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즐거운 웃음을 지으면서 모든 일을 처리하곤 한다. 또, 필리핀 어딜 가던지 낙천적이고 행복한 자세로 손님을 맞이하는 필리핀점원들을 볼 수 있다. 백화점에서도 어린아이가 전시해 놓은 물건을 마구 어지럽혀도 점원 아가씨는 화내거나 불쾌해하지 않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다시 정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또, 길거리에서 길을 묻거나 도움을 청하면 최대한 도와주는 필리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요즘의 필리핀 사람들은 과거와는 달리 좀 더 바빠지고 예전의 여유를 잃어버린 듯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 지방이나 시골로 가면 아직도 예전의 필리핀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문화가 직접적이고 조금 공격적인 문화라면, 필리핀의 문화는 간접적이고 감추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도중 음식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한다면 한국은 이를 바로 지적하고 고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사장과 손님이 서로 큰 소리를 내 가며 언쟁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필리핀 문화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바로 항의를 하기보다는 그냥 참고 다음번에는 이 가게에 가지 않는 편을 택하게 된다. 한국으로 보자면 소극적이지만, 나름의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 셈이다.
관광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방문한 필리핀인 여럿을 알고 있는데, 한국에 다녀와서 일정이 몹시 힘들었다, 혹은 너무 바쁘게 돌아다녀 관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음식이 너무 매웠다 등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직접적으로 여행사나 가이드에게 이런 불평을 하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필리핀 방식은 최대한 참다가 정 참지 못하게 되었을 때, 조용히 관계자를 불러내서 차분히 자기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끔 필리핀에 살다가 현지인과 다툼이 생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입장 차는 있겠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론은 한국인이 큰소리로 현지인을 나무라거나 신체적 조건을 앞세워 폭행을 하려는 데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필리핀인의 '히야'문화, '아모르 프로피오'
필리핀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히야'문화인데, 필리핀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망신당하는 것이다. 자신과 타인의 잘못을 떠나, 누군가 큰소리로 군중 앞에서 자기를 혼낸다면, 자기를 혼내거나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낸 사람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고 언젠가는 이것에 대해 꼭 복수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온 교민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인데, 한국사람 눈에 차지 않는다고 여러 직원이 있는 곳에서 잘못에 대해 지적하거나, 심지어 직원에게 손찌검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일이 더 큰 사건의 시작이 되곤 한다.
일화가 있는데 한 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 미국인, 필리핀인을 상사가 공개적으로 혼낸다면, 한국인은 뒤에서 상사의 험담을 하고, 미국인은 그자리에서 바로 상사에게 왜 자신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필리핀인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가 얼마 후에 칼을 들고 쫓아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필리핀인에게는 자존심이 어느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히야' 문화와 빼놓고 말 할수 없는 것이 바로 '아모르 프로피오'(자기애)라는 문화로 일종의 '명예', '자존심'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애의 감정은 수치스러움에 대한 절대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게 함과 동시에, 필리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무감을 부여해 준다. 예를 들어, 자식으로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면 자존심과 자존감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어, 자기 자신으로서도, 사회에서도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히야' 와 '아모르 프로피시오'는 필리핀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내성적으로 보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히야를 지키지 못할 경우, 예를 들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직장에서 필리핀 사람들이 자주 결근을 하다, 혹은 잘못을 저지르고 조용히 잠적하듯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한국식으로 '도주'라고 보기보다는 자기 잘못을 수동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외부적으로 조용히 표현하는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아모르 프로피시오(자기애)'는 때로 익명의 공간(페이스북) 등에서 적극적으로 발휘되어 자신의 생활에 대한 사진이나 자신이 갔던 여행지에 대한 사진을 수없이 올리는 것에도 연결된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뽐내는 행위). 한국 사람들은 자기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한 자기애가 한국인보다 더 높은 듯하다.
'빠끼끼사마'
필리핀 사회 내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어 문제를 지적해야 할때는 절대로 공개된 장소에서 마치 인민재판 하듯이 누군가를 비난하면 안 된다. 이런 행동은 위의 '히야' 문화와 결합되어 큰 사고의 원인이 되곤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필리핀 사회에서는 빠끼끼사마 라는 문화가 존재한다. 빠끼끼사마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누군가 잘못했을 경우, 잘못의 크고 작음을 떠나 그 사람을 조용히 외부로 불러내어 조용히 잘못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이 문화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부드럽게'살아기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필리핀 티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코미디나 쇼 프로는 유머와 화려한 춤, 대화로 일상생활의 문제들을 부드럽게 풀어가는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화는 적은 월급, 어려운 생활을 잊기 위해 코미디 쇼나 유머가 발달되어 있으며, 이를 지나치게 화려한 지프니 장식, 다양한 가품(짝퉁) 명품, 스포츠 브랜드를 입는 걸로도 표현되곤 한다.
누군가에게 혼나거나 잘못을 하여 지적을 받는다면, 한국과 같이 어두운,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사태에 대한 파악은 되어 있으나, 한국 사람이 보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옅은 미소를 띠고 미안함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된다.
'우땅 나 루옵'
우땅 나 루옹은 '은혜 갚기'라는 필리핀식 표현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다. 힘든 상황이 닥치면 모두가 돕고, 또 자신이 어려워져도 이런 부분을 주변에 쉽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거 마을의 부자들은 어려운 시기에 동네의 서민들을 돕고, 작물의 수확철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비용을 받지 않고 부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우땅 나 로옴 문화를 지켜나가기도 한다.
외국인의 경우, 보통 부자라고 인식되어 있어, 주변에서 선물을 사달라고 한다던지 하는 요청을 많이 받기도 하는데, 이런 표현은 정말 선물을 사달라거나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주면 좋고, 안 줘도 이에 대해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선물을 주게 되면 한국처럼 비싼 것이나 정말 쓸만한 것을 줄 필요는 없다. 친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또 유지하기 위한 자그마한 선물이어도 괜찮다.
외국인이 필리핀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아마 언젠가는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요청을 받게 될 것이다. 이때, 돈을 빌려준다면 거의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빌려주게 되면, 외국인이 필리핀 친구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필리핀 인은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할 것이다.
필리핀에서 주의해야 할 것
한국인은 교민이 아닌 이상 필리핀에 방문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관광객으로 여행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리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하다 보니, 한국에서처럼 급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지인과 이런 부분에서 충돌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여행 와서 현지인과 충돌이 있을 경우 절대 싸우지 말고, 조용한 목소리로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해 주면서 상대방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게 만드는 편이 좋다. 또, 경찰 등 필리핀 공무원에 적발되었을 경우, 최대한 공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이해와 동정 구해 상황에 대한 이득을 취하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세관원에게 적발되어 꼭 벌금을 내야 할 경우, 벌금을 다 내기보다 상황을 좋게 설명하여 최대한 벌금을 깎는 편이 좋겠다. 관광객의 말이 옳다고 하여 끝까지 이를 주장한다면, 세관원의 히야(자존심)를 건드리는 꼴이 되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만일 가격문제로 다툼이 생겼을 경우, 끝까지 이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적정 선에서 합의를 해서 조용히 사태를 마무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업하는 경우, 현지 사는 교민들도 많이 잊어버리곤 하는데, 직원의 잘못에 대해 큰소리로 지적하기보다는 조용히 불러서 잘못을 알려주고 이에 대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 더 필리핀 문화에 걸맞은 해결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더 쉬운 방법이 있는데, 바로 보증인이나 중재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잘 아는 후견인이나 친구, 또는 회사의 매니저를 시켜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게 한다면, 잘못을 저지른 직원의 히야를 지켜주면서 잘못이 있음을 암묵적으로 알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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